남북조(南北朝)

남북조(南北朝 420-589)시기는 중국 역사상 분열과 전란(戰亂)의 시기였다. 삼국시대 이후 진무제(晉武帝) 사마염(司馬炎)에 의해 다시 천하가 통일되어 서진(西晉) 왕조가 등장했다. 하지만 서진은 황실의 내분으로 내란이 발생했고 이 틈을 타서 흉노족이 침입했다. 서진 황실이 장강을 건너 남경(南京)에 도읍을 정하고 동진(東晋)왕조를 세웠다.

한편 장강 이북에서는 ‘5호16국’ 시대가 되었다. 439년 선비족(鮮卑族)인 탁발도(拓跋燾)가 장강 이북을 통일했다. 420년 동진의 권신 유유(劉裕)가 진공제(晉恭帝)를 폐위시키고 송(宋)나라를 세워 남조 최초의 정권이 시작되었다. 이로부터 남북조가 서로 대치하는 국면이 정식으로 시작되었다.

581년 수왕(隨王 훗날의 수문제) 양견(楊堅)이 북주(北周)의 정제(靜帝)를 폐위시키고 수(隋)왕조를 건립했다. 589년 수나라 군사들이 남조의 마지막 왕조인 진(陳)나라를 멸망시키고 서진 이후 약 3백 년간 지속된 분열과 전란의 국면을 종식시켰다.

남북조시기에 많은 소수민족이 중원에 들어왔지만 곧 한문화(漢文化)에 동화되었다. 가장 두드러진 예가 바로 북위(北魏)의 효문제(孝文帝 467-499)다. 그는 ‘남벌(南伐)’을 구실로 낙양으로 도읍을 옮긴 후 체계적인 한화(漢化) 작업을 진행했다. 가령 선비족들이 한족의 성(姓)으로 바꿀 수 있도록 허락했는데 자신의 성도 원래 ‘탁발’이었지만 ‘원(元)’씨로 바꿨다. 그는 또 선비족의 의상을 한복(漢服)으로 대체했으며 선비어도 한어로 바꾸고 선비족 귀족과 한족의 혼인을 장려했다. 정치적으로도 남조의 제도를 참조해 북위의 정치제도를 고쳤다.

남북조시기는 중국에서 불교가 크게 발전한 시기이다. 북위(北魏) 때 만들어진 운강석굴(雲岡石窟)에는 5만 1천여 존의 불상(佛像)이 있으며 이는 중국 4대 석굴의 하나이다. 초기 중국의 불상은 간다라 미술과 굽타 왕조의 영향을 많이 받았다. 불상의 모습과 자세 역시 풍만한 얼굴, 깊이 들어간 눈과 우뚝 솟은 코 등 이국적인 풍격이 강했다. 북위 효문제 시대에 한화(漢化) 개혁을 거친 후 불상의 복식에서 모습에 이르기까지 점차 중국인의 모습을 닮아갔다.

6세기 초 선종(禪宗)의 조사(祖師) 달마(達摩)가 인도에서 중국으로 건너왔다. 달마는 남경에서 당시 양무제(梁武帝)와 불법(佛法)에 대해 담론한 후 법의 인연이 아직 닿지 않았음을 발견하고 갈대 하나로 강을 건너 북위(北魏)로 건너갔다. 달마는 소림사(少林寺) 오유봉(五乳峰) 석굴에서 9년간 면벽(面壁)해 그림자가 돌에 새겨질 정도였다. 개오(開悟)한 후 선종 법문을 창립했다. 선종사상은 후대 유가(儒家) 학설에 깊은 영향을 끼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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