명(明)

명조(明朝 1368-1644)는 중국역사상 한족(漢族)이 건립한 마지막 중원 왕조였다. 명태조(明太祖) 주원장(朱元璋)이 몽골을 중원 밖으로 축출한 이후 국력이 신속하게 회복되어 명성조(明成祖) 때 이르러 전성기를 맞았다. 명성조는 본래 주원장의 넷째 아들로 사막을 누비며 대적할 사람이 없던 뛰어난 군인이었다. 그는 도읍을 남경에서 북경으로 옮긴 후 ‘영락대전(永樂大典)’을 편찬하게 했다. 이는 천문, 지리, 음양(陰陽), 의학, 복서(卜筮), 승도(僧道), 방기(方技), 문학, 예술 등 백과전서식의 저작으로 총 분량이 3억 7천만 자에 달하는 방대한 저서다. 수록된 도서들을 삭제하거나 수정하지 않아 수많은 진귀한 고적(鼓笛)들의 원형을 보존할 수 있었다. 나중에 전쟁으로 훼손되긴 했으나 아직도 중국, 일본, 한국, 베트남, 영국, 독일과 미국 등에 일부가 보존되어 있다. 이중 해외에서는 미국 의회도서관에 가장 많은 책이 보존되어 있다.

명성조는 7차례에 걸쳐 28년간 정화(鄭和)를 서양에 파견해 세계무역을 촉진시켰고 특히 중국의 문화를 널리 선전했다. 정화의 함대는 약 30여 개 나라에 도달했으며 가장 먼 곳은 아프리카 동부와 홍해였다. 일각에서는 정화가 미주 대륙이나 호주 및 뉴질랜드에도 도착했을 가능성이 있다고 보기도 한다.

명성조의 연호가 영락(永樂)이기 때문에 이 시기를 ‘영락의 치(永樂之治)’라 하며 문치와 무공이 한당성세(漢唐盛世)에 필적할 만 했다.

이 시기에는 백화소설(白話小說)이 아주 발달해 사대명작 중의 ‘삼국연의’, ‘수호전’과 ‘서유기’가 모두 이 시기에 쓰여졌다. 이외에도 ‘동주열국지(東周列國誌)’ 및 단편소설집 ‘삼언(三言)’, ‘이박(二拍)’ 등의 명저도 탄생했다.

명나라 때는 도교(道敎)가 아주 흥성했는데 가정제(嘉靖帝 1521-1567)는 경건한 도교신도였다. 왕양명(王陽明)은 유가의 ‘심학(心學)’을 널리 발양해 유가 철학의 중요한 지파를 형성했다. 이시진(李時珍)은 ‘본초강목(本草綱目)’이라는 의학서를 저술했는데, 오늘날까지 중의학에서 중요한 서적으로 남아 있다.

명신종(明神宗) 만력(萬曆) 20년과 25년 두 차례에 걸쳐 일본의 도요토미 히데요시가 조선을 침략하자 명나라에서 조선에 구원군을 파견해 일본을 물리쳤다.

명나라 말기 환관의 난이 발생했고 1644년 농민반란군 두목 이자성(李自成)에 의해 멸망당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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