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元)

원조(元朝 1271-1368)는 중국 역사상 최초로 소수민족이 한인(漢人)지역을 정복하고 건립한 통일왕조다. 또한 중국 역사상 가장 넓은 영토를 가졌던 왕조로 1271년 쿠빌라이에 의해 건립되었다.

원의 전신(前身)은 몽골제국이었다. 1206년 테무친이 몽골의 여러 부족을 통일한 후 오논 강변에서 대회를 열었다. 여러 왕과 대신들이 테무친을 존중해 ‘칭기즈 칸’이라 불렀다. 쿠빌라이는 바로 칭기즈 칸의 손자이다. 1267년 북경[北京 당시 이름은 대도(大都)]으로 도읍을 옮기고 1271년 조서를 발표해 나라를 세웠다. 나라 이름을 ‘대원(大元)’으로 한 것은 ‘역경(易經)’에 나오는 “대재건원(大哉乾元)”의 의미를 딴 것이다.

쿠빌라이는 1279년 남송을 멸망시키고 중국 전역을 통일했다.

몽골의 대군이 동서로 정벌전쟁을 거친 후 4개의 한국(汗囯)이 잇달아 건립되었다. 드넓은 유라시아 대륙에서 인도와 서유럽을 제외한 나머지 거의 전 지역이 몽골의 지배하에 들어갔다. 4한국은 모두 원조(元朝)의 종주국 지위를 인정했다. 당시 원나라가 직접 통치한 지역은 한당(漢唐) 시기의 판도를 뛰어넘어 지금의 티베트, 외몽골과 러시아의 대부분 지역을 포함하는데 전체 면적이 1372만㎢에 달했다.

넓은 땅을 차지하게 된 원조에서는 외국과 교역도 활발했다. 중국과 인도, 중동, 지중해, 유럽에까지 연결하는 해양실크로드도 발달했다. 당시 140개국과의 교역을 통해 다양한 문화가 수입됐다.

또 수십 명의 아랍인과 유럽인이 원나라를 방문했고 일부는 황실에서 관리로 일하기도 했다. 이들 외국인들은 여행기에 원나라를 방문했던 자신들의 경험을 남기기도 했는데, 베니스의 상인 마르코폴로가 가장 유명했다. 유럽에서 이들이 쓴 여행기가 인기를 끌면서 서양의 대항해시대를 여는 자극제가 되기도 했다.

몽골은 몽골문화와 한화(漢化)를 병행하는 방침을 실행했는데 처음에는 과거제도를 실시하지 않았다. 이렇게 되자 유가(儒家) 문화 중에서 서민문화 부분이 신속히 발전해 희곡(戱曲)이 흥성해졌다. 아울러 ‘원곡(元曲)’과 원잡극(元雜劇)이 ‘당시(唐詩)’와 ‘송사(宋詞)’의 뒤를 이어 중요한 문화체계의 하나로 자리 잡았다. ‘수호전’이나 ‘삼국연의’ 등 원말명초(元末明初)에 나타난 소설들은 비록 책이 완성된 것은 명대(明代)지만 작자들은 대부분 원조(元朝)에서 출생했고 이들의 거둔 성과 역시 원나라 때 서민문화가 유행한 것과 관련이 있다. 산수화와 화조화 역시 문인들의 정서를 드러내는 중요한 형식이 되었다.

원조는 쿠빌라이 때부터 부분적인 한화정책을 실시했다. 1307년 원성종(元成宗)은 공자를 ‘대성지성문선왕(大成至聖文宣王)’에 봉했다. 1315년에는 원인종(元仁宗)이 과거제도를 회복하라는 명령을 내렸다. 정치 제도적으로 볼 때 원조는 기본적으로 수당에서 시작된 ‘삼성육부제(三省六部制)’를 계승했다.

종교적으로 원나라 때는 티베트불교가 성행해 도교나 한인지역의 불교보다 우세했다. 하지만 원은 종교에 대해 개방적이고 포용적인 태도를 보여 각종 종교가 아주 흥성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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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明)
몽골초원
몽골족 복식
몽골무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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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漢)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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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唐)
송(宋)
명(明)
청(清)